북송당했을 때 도움 준 캐나다 선교사에 감사

워싱턴-정영 jungy@rfa.org
2019-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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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서울 종로구 효자동 중국대사관 앞에서 열린 북한인권단체들의 탈북자 강제북송중지 촉구 기자회견에서 요덕수용소에서 수감생활을 한 뒤 재탈북에 성공한 한 탈북자가 마스크를 쓰고 증언하고 있다.
지난 2012년 서울 종로구 효자동 중국대사관 앞에서 열린 북한인권단체들의 탈북자 강제북송중지 촉구 기자회견에서 요덕수용소에서 수감생활을 한 뒤 재탈북에 성공한 한 탈북자가 마스크를 쓰고 증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탈북기자가 본인권> 진행에 정영입니다. 북한을 떠나 남한이나 미국에 둥지를 튼 탈북민들 중에는 강제북송을 당한 아픔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중국은 유엔 난민협약 당사국임에도 불구하고, 탈북민들을 난민으로 인정해주지 않고 한해에도 수많은 탈북민들을 체포해 강제로 두만강과 압록강을 넘깁니다.

중국은 1988년 고문방지협약에 가입한 당사국임에도 불구하고, 북송되면 고문과 혹독한 처벌이 가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탈북민들을 북송해 국제사회로부터 인권유린국이라는 불미스런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 11월 29일 중국 국경을 넘어 베트남, 즉 윁남에 입국해 한국으로 가려던 탈북민 10여명이 중국으로 강제 추방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남한 탈북민 지원단체 관계자들은 만약 이들이 중국 당국에 공식 인계되면 강제북송 위기에 놓이게 된다면서 대한민국 정부와 국제사회에 조속한 대응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미국 동부지역에 사는 이정숙(가명)도 6년전 길림성 용정시에서 중국 공안에 체포되어 강제북송됐으나, 재탈북에 성공해 현재는 미국정부로부터 난민지위를 받아 미국에 정착해 살고 있습니다.

이정숙씨의 경우 중국 시장에 나갔다가 누군가의 밀고로 중국 당국에 체포되었다고 하는데요, 남편과 아이들을 중국에 두고 홀연 단신으로 체포되어 강제북송되어 매우 괴로웠다고 자유아시아방송에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름도 나이도 전화번호도 모르는 캐나다 국적의 한 기독교 선교사의 도움으로 아이들은 중국에서 무사히 안전한 곳에 있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이라도 그분을 만나면 인사라도 하고 싶다는 이정숙씨. 탈북과 강제북송의 여정을 직접 들어보겠습니다.

질문: 북한으로 송환되었다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몇번 되었습니까,

이정숙: 저는 한번 됐습니다. 시장나갔다가 잡혔습니다. (길림성)량수천자 사이에 개산툰이 있는데, 시장 나갔는데 누군가 꼬장(고발의 중국어)한 것 같아요. 시장에 나갔다가 잡혔어요.

질문: 그러면 남편과 아이들도 함께 잡혔습니까,

이정숙: 그때 당시 우리는 중국에 있는 친척집에 가지 않고 금방 들어와서는 우리끼리 살았어요. 그런데 북한에 한번 잡혀 나갔다가 와서 다시 친척집으로 갔지요.

질문: 그러면 가족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이정숙: 애들은 산속에 있지 않고 중국집에 전도사의 집에 가 있었습니다. 우리 둘 부부가  산속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비닐박막으로 따푸(산전막)를 치고 만든 집에서 살았어요. 여름이니까, 물은 바닥을 파니까, 나왔습니다. 물이 나와 마실  수 있었고, 그리고 한 겨울에는 주인집 과수막에 있다가 여름 한철에는 약간 더 산속으로 들어가서 살았습니다. 우린 산전막을 두개 가지고 있었습니다.

질문: 그런데 그렇게 인가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았는데 왜 잡히셨나요?

이정숙: 우리는 개우리 같은 곳에서 살면서 마을 사람들의 삯일을 하고 살았는데, 중국인들이 자기네것을 해줘야 하는데, 우리가 삯일을 맡은 게 많으니까 미처 해주지 못하니까, 누군가 고발한 것 같습니다. (탈북자는)조금만 어싸하면(좀 거슬리게 놀면) 중국에서는 고발하지 않나요?

질문: 혹시 도문 변방 감옥에서 탈북민들을 심하게 다루었습니까?

이미숙: 한국행 아이들은 아주 심하게 다루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순수하게 중국에서 일을 하다가 잡혔기 때문에 별로 심하지 않게 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감옥에 가서 또 어리숙하게 말 한마디 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중국말을 하게 되면 간수들이 더 달굽니다.

질문: 그러면 중국 도문변방에서 북한 온성보위부로 나갈 때 몇 명이나 같이 나갔습니까,

이정숙: 25~30명 정도 차면 도문 변방대에서도 북한으로 송환됩니다. 그 변방대에 북한 사람들이 완전히 많이 잡혀 나옵니다. 한국으로 가다 잡힌 사람들은 중국에서도 돈을 좀 뽑아낼까 해서인지 한 3~4개월씩 잡아두는 것 같습니다.

질문: 한국으로 가던 탈북자는 어떻게 처리합니까,

이정숙:북한 보위부에서도 한국가던 사람들은 약 6개월 정도 조사하는 것 같습니다. 북한에 나가면 도 보위부에 가서 심사를 많이 거칩니다. 그들의 자료가 중앙보위부까지 가거든요. 그래서 거기서 (한국행 탈북민을) 전거리 보내겠는지, 아니면 정치범 수용소로 보낼지 판단하는 거지요.

이정숙: 그리고 저희 집은 온성군이 고향이다 보니까, 금방 뽑아내가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먼저 꼽바크(노동단련대의 비속어)에 들어가면 온성군 보위부에서 “자, 너희 사람이 나왔다”고 대주면 담당 주재원이 데리러 옵니다. 담당 주재원이 빨리오면 빨리 나가고, 늦게 오면 늦게 나가고 그렇습니다.

나도 북한에 가니까 담당 보위 지도원이 나한테 와요. 보위부에서 온 담당 보위원이 와서 면박을 줍니다.  “이 간나, 개 간나”하면서 욕설을 퍼붓습니다. 그러면서 나에 대한 신상을 조사해야 하니까, 20일 동안 조사를 받았습니다. 그 뒤 꼬바크에 나가서 일주일 있는데 보안서 담당 주재원이 와서 “이 개간나야 어떻게 잡혀 나왔어?”라고 면박을 주어서 “시장갔다가 잡혔습니다”라고 하니까, “ 돈 가져왔나?”라고 해서 “원래는 800위안을 가져오다가 중국 변방 감옥에서 떼우고 200위안만 가져왔습니다”라고 했더니 담당 주재원이 “야, 000야, 그거 다 살려가지고 왔어야지”라고 합니다. 돈만 있으면 다 됩니다. 그 다음부터는 슬슬 풀리더라구요.

질문: 중국 갔다가 잡혀나가도 감옥은 안가는 군요.

이정숙: 네 대신 거기 있는 동안 소처럼 일을 해야 하지요. 새벽 4시부터 일을 하는데, 그때가 가을이니까, 옥수수 따기를 해야 하고, 그추운데 강냉이 모으기 하고, 배추가을 동원 나가야 하고, 산에 나무하러 가야하고, 정말 일주일동안 온갖 지저분한 일을 다해요.

질문: 겨울에 새벽 4시면 낡이 캄캄할 텐데요. 그래도 꼬바크에서는 기상시킵니까,

이정숙: 네, 새벽 4시 반에 일어납니다. 그 다음부터는 체조를 하지요. 앉았다 섰다 노래부르고 밖에 나가서 당신이 없으면 노래를 부르면서 몇바퀴씩 운동장을 돌면서 체조를 받고 들어옵니다.

질문: 무슨 노래를 불렀습니까,

이정숙: “당신이 있으면 우리도 있고…” 이런 노래 있지 않습니까,

질문: 중국으로 탈북했는데, 온성군에 옛날에 살던 집이 있었습니까,

이정숙: 없지요. 그래서 저는 (집이 없어서)저희 동생 집에 가 있었는데요. 분주소 비서란 사람이 내 담당이었습니다. 꼬바크에서 퇴소한 다음 분주소에 오라고 해서, 아침 9시에 가니까 그때 분주소에 갈때는 거저 가면 안됩니다. 돈이고, 쌀이고 다 챙겨가지고 가서 비서네 집에 다 놓고 나왔습니다.

비서한테 돈을 주니까, 그 사람은 “그거 받으면 안된다”고 합데요. 그래서 비서네 집에 딱 갖다주고 왔는데요. 다른 사람들은(중국에 갔던 사람들은) 24시간 감시를 한다고 하지 않나요?

그런데 제가 우리 거주지 담당 주재원에게 돈을 먹였는데, 그 주재원이 우리 동생네 집 부락의 보위지도원이 따로 있지 않습니까, 그 보위지도원에게 우리 담당 주재원이“그 애를 잘 대해주라”고 했대요. 아마 다시 달아날까봐 감시를 잘하라는 소리겠지요.

질문: 그런데 한번 북송됐었는데, 다시 탈북할 용기가 있었나요?

이정숙: 오빠와 동생은 나에게 가지 말라고 하는데, 나는 “나는 여기서 못산다, 국가에서 나에게 돈을 주냐, 쌀을 주냐고 난 여기서 못산다”고 하니까 동생과 오빠는 기겁하더라구요. 빨리 가라고 하더군요.

질문: 그래서 다시 재탈북하게 되었군요. 그런데 국경감시가 심했을 텐데요.

이정숙: 제가 도강 통로를 아니까, 그리고 경비대의 교대시간을 알고 있으니까, 그걸 이용하고, 그리고 도강하는 시간이 달이 뜰 무렵, 그때는 완전히 적막입니다. 완전 새까맣습니다. 그리고 날이 밝기 전에도 적막입니다. 이런 시간을 이용한 것이지요.

질문: 그런데 방금 말씀 하신던 중에 혼자 강제 북송될 때 남겨둔 아이들을 돌봐준 사람이 있다고 하셨는데요, 그들과 지금도 알고 지내고 있습니까?

이정숙: 그 사람은 캐나다 선교사였습니다. 일년에 한번씩 중국 들어왔다가 그 사람이 돈을 주고 갔는데, 연락처도 없어서 연락을 못하고 있습니다. 저희에게 전화번호도 안 알려주었습니다. 탈북자들 도와주는 게 노출되면 안된다고 하면서 많이 경계했습니다.

연락처를 달라고 하면 “알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해서 우리도 경계를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그도 우리를 얼핏 한번 만나고, 기도하고 가고 하니까, 우리를 언제 봤다고 연락처를 주겠습니까, 정말 외지 나와서 의지할데도 없는 방황하는 사람들을 도와주었는데, 그게 고마운거지요.

이정숙씨는 중국에서 활동하는 미국과 캐나다의 기독교인들은 안전 때문에 전화번호나 이름을 공개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다만, 1년에 한번씩 중국에 숨어 있는 탈북민들을 위해 기도를 하고 생활비를 제공했다고 말했습니다.

지금이라도 만나고 싶지만, 당시 연락처를 주고 받지 않아 알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한 사람들의 도움으로 자유를 찾게 되었지만, 미국에 잘정착해 산다는 이야기만은 전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탈북기자가 본 인권> 오늘 시간을 마칩니다. 지금까지 정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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