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나라 인민의 나라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19-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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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경축식에 참석한 이승만 대통령과 맥아더 총사령관.
사진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경축식에 참석한 이승만 대통령과 맥아더 총사령관.
/연합뉴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남쪽의 국민의 나라와 북쪽의 인민의 나라는 같은 해에 태어났지요. 각기 헌법을 만들고 정부와 정권을 세워 국민과 인민을 다스려 온지 71년이 넘고 있습니다.

한국 교과서에 인민이란 표현이 있다고 해서 논란이 있다는 보도를 접했습니다. 어떤 내용인지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이야기 나눕니다.

임채욱 선생: 네, 그건 고등학교 윤리교과서에 인민주권이란 말이 나온 것을 말하는데요, 국민주권이라고 써오던 것을 인민주권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한국 교육부가 2015년 바꾼 교육과정 집필기준에 인민주권으로 표현하도록 했습니다. 교육부에서는 사회계약론에 나오는 영어의 people이 국민보다 인민이라는 표현이 더 가깝다고 본 것입니다.

글쎄요? 그렇더라도 지금까지 국민이라고 써 오던 것을 인민이라고 바꾸면 혼란이 생기지 않을까요?

임채욱 선생: 교육부 당국자는 인민을 ‘국가나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이라는 중립적 의미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헌법에 국민으로 돼 있는데 교과서에서 다른 표현을 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그리고 인민이 중립적인 용어라고 하지만 북한 헌법에서 인민이라고 하는 한 이념적 또는 정치적인 용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럼 큰 문제가 되는 것이군요?

임채욱 선생: 모든 교과서가 그런 것은 아니고 어떤 교과서는 국민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현재 국민으로 표기한 교과서가 많지만 문제는 교육부 당국이 인민이란 용어를 중립적 표현이라고 보는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다른 나라는 몰라도 한국에서는 인민은 북한 때문에 중립적 용어가 결코 될 수 없습니다. 혹 전문학자들은 인민이란 용어를 쓸 수도 있지만 학생들에게 대한민국 구성원이 인민이라고 가르치는 것은 잘못 된 것이지요.

그럼 국민은 옳은 용어가 되는 것입니까?

임채욱 선생: 국민은 전에도 이 시간에 한 번 언급했듯이 국민국가의 구성원이란 뜻으로 쓰는 것입니다. 국민국가는 19C 유럽에서 시작된 정치공동체이지요. 중세 봉건사회를 벗어난 시점에서 (절대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개인은 점차 주권개념을 가지게 되고 이 개인의 집합적인 실체로 국민이 형성됩니다. 이 국민으로 된 나라가 국민국가지요. 이때 국민은 영어로 피플(People)이 아니라 네이션(Nation)에서 온 것입니다. 한국은 1948년 국민이 국가형성의 주체가 되는 국민국가로 출발했습니다.

국민국가, 그러니까 국민의 나라와 인민이 주권을 가진 인민의 나라는 어떻게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남쪽의 국민의 나라와 북쪽의 인민의 나라는 같은 해에 태어났지요. 각기 헌법을 만들고 정부와 정권을 세워 국민과 인민을 다스려 온지 71년이 넘고 있습니다.

남쪽은 정부수립 때 유엔으로부터 한반도 유일한 합법정부로 인정됐지만 북쪽은 수령 한 사람만이 나라 만들기에 나섰는지 헌법도 김일성 헌법으로 돼 있지요.

국민의 나라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고 인민의 나라도 주권은 인민에게 있다고 돼 있습니다.  통치이념으로는 한쪽에선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내세웠고 다른 쪽에서는 인민민주주의를 내세우면서 살아옵니다. 남쪽은 산업화에 성공해서 세계 10위권 경제를 가진 나라가 됐고 북쪽은 핵을 가진 나라라고 헌법에도 밝히고 있지만 인민들이 사는 형편은 어렵다고 하지요. 그래도 남쪽에서 도우려고 나서면 자존심 때문인지, 아니면 전략적인 판단 때문인지 받지를 않으려 하지요.

국민의 나라, 인민의 나라는 같은 핏줄을 타고 났지만 오랜 세월 막혀 있다 보니 제도, 사상 뿐 아니라 습관이나 행동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임채욱 선생: 그렇지요. 이쪽의 낙지를 오징어라 하고 저쪽의 오징어를 이쪽에선 낙지라 한다면 달라도 많이 다른 것이지요. 남쪽 사람들이 가위 · 바위 · 보라고 하면 북쪽 사람들은 돌 · 가위 · 보라 하지요. 그래도 작년 북한통치자가 남쪽과 다르게 바꿨던 표준시를 원래대로 바꿨으니 참 잘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작년 2월 평창에서 겨울올림픽이 열렸을 때 북한 여자 응원단은 얼마나 일사불란 했는지 미국 한 방송 사회자는 목숨이 달린 것처럼 열심히 응원했다고 표현했지요. 그런가 하면 남쪽사람들은 6월 6일 나라 위한 군인과 애국선열들을 추모하는 현충일에도 경건한 사람들 보다 무심히 지나는 사람들이 더 많은 모습을 보이지요. 애국심을 강제하지를 않아서 그렇지요. 하지만 북쪽이라면 그게 허용됩니까? 하나의 가락에 천만가락이 따라 움직이는 세상에는 시키는 대로 하지 않을 용기를 가지지는 못하지요. 거기에는 인민의 목소리는 없습니다.

이렇게 다른 모습이더라도 같은 겨레라고 ‘우리는 하나’를 내세우고 호응하기도 하지요?

임채욱 선생: 핏줄이 같고 말이 통하고 긴 역사를 함께 이어온 사람들이니까 같은 민족임에는 틀림없지요. 하지만 이런 것만 같다고 당장 친밀감을 느낄까요? 기질이나 감정이나 정서가 같아야 친밀감을 느끼는 것이 아닙니까. 같은 민족이라도 한쪽이 자기들을 김일성민족이라고 한다면 받아들이기 어렵지요. 민족공조라는 북쪽의 주장은 공허한 것입니다. 뭣보다 존재론적으로 확실하게 두 개의 나라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둘이 있는 것이 분명한 현실이지요. 남쪽과 북쪽은 이런 현실인식 위에서 친선교류를 하던 화해를 하던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통일을 하지 말자는 것은 아니지요? 같은 민족이 두 나라로 사는 경우도 없지 않잖아요? 독일과 오스트리아 같이 같은 게르만 족이지만 달리 살면서도 잘 지내고 있지요.

임채욱 선생: 남쪽에서는 북쪽 유일체제에 동조하는 극소수 사람이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민족보다 국가를 중시해서 한반도에 2개의 나라가 있다는 것을 현실적 대안으로 보기도 합니다. 남쪽사람들이 핵을 가진 북쪽이 위협을 하더라고 통일이란 이름 때문에 풍요롭고 자유로운 삶을 포기할 리 없고, 북한 인민들이야 물질적으로 좀 부족하더라도 자주성을 귀중히 여기고 투쟁과 단결을 구호로 삼아 고생하면서 살아왔기에 이른바 제도적 통일을 바랄지 모르지만 통치자야 통일을 위해 절대권력을 내려놓지는 않겠지요.

제2차 세계대전 후 몇몇 분단국이 생겼지만 대화나 협상을 통해 통일된 분단국가는 없었지요. 베트남은 무력통일이고 예멘도 결국 무력통일로 종결됐고 독일은 일방적인 흡수통일이었지요. 그러니 남쪽의 사람들, 특히 젊은 사람들은 따로 살자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지요.

그럼 통일은 영영 멀어지는 건가요?

임채욱 선생: 아닙니다. 따로 살자는 것은 자유, 평등과 같은 근대적 이념을 추구하는 공동체의식을 바탕에 둔 민족주의, 즉 시민적 민족주의라고 하겠는데 이걸 추구하는 것입니다. 시대적 추세로 보면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피와 땅에 정서적으로 집착하는 종족적 민족주의도 아직 강합니다. 이 둘을 변증법적으로 지양하는 통일민족주의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그게 불가능 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분단으로 인한 고통과 민족의 역량을 소모하는 일을 피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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