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송 재일교포- 우린 완전히 속았다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20-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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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1960년 북송된 재일동포와 만경봉호.
사진은 1960년 북송된 재일동포와 만경봉호.
/연합뉴스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25년동안 10만명 규모의 재일 교포와 그들의 가족이 북한으로 갔습니다. 이들은 정말 원해서 자발적으로 북송선을 탔던 것일까? 그리고 북한에 간 이들은 그들이 원하는 행복을 찾을 수 있었는지도 궁금해 집니다. 지난해 12월에는 첫 북송선이 출항했던 니가타항에서 일본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현지에서 사망한 이들을 위한 60주년 추모제가 있었는데요. 오늘은 재일북송피해자가족협회 이태경 회장을 통해 북송사업의  진실을 알아봅니다.

이태경: 북송은 한마디로 말하면 그냥 거짓 사기로 됐다는 것을 북송된 모든 사람이 말하는 겁니다. 나는  9만3340명 북송자들의 공통점이 뭔가 하면 다 후회했다는 거예요.

1960년 일본 니가타 항에서 북한으로 가는 배를 탔을 당시 10살이었던 이태경 회장은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그 시간으로 돌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이태경: 물론 그때 당시에는 다 몰랐죠. 지상낙원으로 간다 했어요.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인데 그때만  해도 조선학교를 다녔으니까 조선시보에서 북한의 발전상을 보여주고 조총련에서 선전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그 선전이란 것이 조총련 뿐만 아니라 일본 정당인 사회당 측에서도 많이 선전을 했죠. 우리는 절대  모르고 갔다는 거예요. 지상낙원이라고 했어요. 일단 이렇게 속여서 거짓말 선전에 속아서 갔다는 것이 첫번째고.

지난 1959년 12월 14일 재일동포 975명은 일본 니가타항에서 북한으로 향하는 배를 탔습니다. 이들은  모두 더 좋은  세상으로 간다는 희망속에 들떠 있었고 이들을 전송 나온 수 많은 인파와 부둣가 한편에서 들리는 취주악단의 쿵짝 거리는 소리는 항구에 울려 퍼졌습니다.

이태경: 그때 상황을 말하면 도보르스트 하고 클리리온 이렇게 두 개의 배가 왔어요. 북한에서 올 때 당에서 왔는지 내각에서 왔는지 간부가 와서 환영연설을 했는데 오색 테이프를 날리고 한쪽으로는 눈물을  흘리면서 슬프기도 하고  한쪽에서는 희망에 찬 그런 감정을 가지고 갔었죠.

1984년까지 계속된 북송 사업으로 재일동포 60여만 명 중 9만 여명이 북한으로 갑니다. 이태경를 포함한 일가족 5명도 1960년 5월 배를 탔습니다. 니가타항에는 이미 도착해 있던 사람들이 있었고 이들과 함께 임시숙소인 인근 학교에서 3일동안 공동생활을 한 후였습니다.

이태경: 타니까 우선 러시아 사람들이 운전을 하는데 노래도 배워주고 한 기억이 나요. 사과꽃필때 이런 노래인데 러시아 사람들이 명랑했어요. 그런데 타서 처음 밥을 먹는데 냄새가 역겨웠어요. 일본에 있을 때는 흰쌀밥만 먹다가 새까만 쌀인데 아마도 잘 도정을 안해서 그렇겠죠. 냄새나는 쌀에 사과도 주먹보다 작은 그런 사과에다가 어쨌든 냄새가 싫었어요. 그런 기억이 있고.

지상낙원으로 향하는 배를 탔다고 생각했지만 귀국선이라 불린 소련 국적의 배에서의 기억은 불편하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불안함은 곳이어 눈앞에 펼쳐진 모습 때문에 온몸을 얼어붙게 만들었습니다.

이태경: 기억을 말한다면 청진항이 보인다.그때 오전인가 항구가 보인다 그랬는데 항을 보니까 말이 아니예요. 우선 사람들이 다 새까맣고 환영하는 노래인 재일동포요 뭐 이런 노래는 하는데 학교에서 동원이 됐는지 회색 학생복을 입고 신발은 검은 편리화를 신었는데 그것을 보니까 한숨이 푹 나와요.  사람들이 보면 알죠. 희망에 차서 니가타 항에서 떠날 때는 잘가라 잘있거라 고함치고 이렇게 하면서 왔는데 청진항에 도착하니까 사람들이 말이 없어요. 기쁘면 기쁘다 슬프면 슬프다 말이 있어야 하는데 …아마도 가슴이 철렁했을 꺼예요 모두가 다.

일부에서는 당시 북송선을 탔던 재일동포들은 대부분 차별과 가난을 벗어나고자 자발적으로 배를 탔다고 알고 있습니다. 정말 일본에서 못살았기 때문에 배가 고파서 먹고 살기 위해 북한으로 갔던 것일까?

이태경: 아니예요. 그게 여러가지예요. 우리는 돈을 주고 갔어요. 돈을 내고. 조총련에서 절대 헌옷, 입던 것, 쓰던 것을 가져가지 말라. 평양의 깨끗한 거리가 더러워 진다. 쓰던 물건은 다 놔두고 가라 .북한에 가면 얼마든지  그런 것이 있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가져가는 돈을 제한했죠. 돈이 많은 사람은 돈을 내라고 했어요. 돈을 많이 내면 더 빨리 가는 거죠. 못사는 사람 잘 사는 사람 구별없이 처음에는 갔죠. 그런데 1970년도 이후에는 가는 사람이 적어졌죠.

지난 1959년 12월 첫 배가 떠난 이래 북송사업은 1984년까지 계속 됩니다. 20년이 넘게 계속됐던  북송사업으로 일본에서 북한으로 떠난 배만 해도 180여 차례 입니다. 몰랐다 또는 속았다고 하기엔 너무도 긴 세월동안 이뤄졌고 그 인원만 해도 10만 여명으로 너무 많았다고 생각되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태경: 일본에서 재일동포들 북송 된 것은 1958년 남일 부수상이 오라고 선언했다는 것 하고 김일성이 또 헐벗고 굶주린 우리 동포들을 우리 당에서는 넓은 품으로 안아준다. 이렇게 해서 그것을 받아서 조총련이 선전하러 굉장히 많이 다녔어요. 그런 꾸준한 선전에 안속아 넘어갈 수가 없는 거죠. 조총련에서 하고 일본 사회당에서도 하고 …

자신이 재일동포 북송사업의 피해자며 탈북해 2009년부터 남한에 살고 있는 이태경 씨는 과거 일본에서 벌어진 북송사업 사업을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이태경: 처음에는 완전한 속음, 속아도 완전히 속았고 두번째는 1970년 이후에 간 사람들은 설마 그럴까 이런 설마로 갔으며 1984년까지라고 했는데 마지막에 간 사람들은 아들이 북한에 갔기 때문에 자식을 보려고 여러 부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나중에는 아마 일본 적십자사에 문건이 있겠지만 나이많은 사람들이 갔을 거예요.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오늘은 25년간 북한에 의해 진행됐던 재일교포 북송사업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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